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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랑이.
랑이는 1살하고 4 개월쯤 되었을 때 나에게 왔다.
고양이, 개, 털 달린 것들은 싫어하는 부모님 덕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집엔 물고기 한 마리 기르지 않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처럼 정원을 가꾸며 100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은 열망은 더욱 커갔다.
고양이를 기른다면 검은 털,
금전이 허락한다면 아비시니안처럼 날씬하고 날렵한 고양이를 기르고 싶었다.
랑이는 하얀색 터키시앙고라다 (단모 터키시앙고라는 없다지만)
게다가 통통한 터키시앙고라다.
좁은 방에 외롭게 지내는 시간이 많았으며
내가 단호하게 사료양을 조절 못한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랑이는 뼈대가 있고 전체적으로 두툼한 인상이다.
아리와 비교를 해보면 그 차이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리는 평범한 한국 고양이로 머리가 작고 팔다리가 가늘며 허리가 긴 편이다.
다만, 넘치는 식탐으로 인해 복부가 걸을 때마다 물결치는 것이 심각한 수준이다)
랑이는 우리 집에 와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랑랑, 난나, 랑이, 돼지, 돼지 시키, 얌마> 등.
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새로운 아명이 붙기도 한다. 대부분 랑이보다는 랑랑이라고 부른다.
랑이라고 부를 땐, 동거인에게 랑이의 안부를 확인할 때와 친구들에게 랑이에 대해 말할 때가 주를 이룬다.
그 외엔 난나, 랑랑이다.
아무래도 소리 내어 부를 땐 아무래도 모음으로 끝나거나 받침이 있는 쪽이 정돈이 된 기분이 든다.
'랑이' 라고 부를 때는 이상하게 뒷맛이 허전하다. 식후 커피를 한잔 마시지 않은 기분.
문을 열고 나와서 문을 닫지 않은 찜찜함.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랑랑'이라고 부르면 피아니스트 '랑랑'이 떠올라 순간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느낌마저 든다.
랑이는 나의 몸 어딘가를 베고 자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다리와 발.
정강이 위에 타고 올라가 다리를 대자로 쫙~ 벌린 뒤 발등에 얼굴을 올리고 잔다.
그러면 하얀 어그부츠 한짝을 신은 것 같은 모습이 된다.
배 위에 올라와 대장이 있는 부분을 앞발로 꾹~ 누르고 올라선 뒤
엉덩이가 보이게 자세를 잡고 그대로 식빵을 굽는다. 그리곤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휘휘 젓기도 한다.
꼬리가 내 뺨을 때리고 눈,코,입을 쓸어도 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
그냥 누워서 맞고 있는 거다. 하얀 꼬리에 후드려 맞을 수 밖에 없다.
랑이의 통통한 엉덩이를 두들기다 보면 랑이 얼굴이 보고 싶어 방향을 고쳐 잡는다.
(엉덩이를 두들길 때마다 털이 날려 얼굴로 쏟아지는 불편함도 있다.)
하지만 그 자세가 무너지면 랑이는 그대로 다른 곳으로 가버리거나
다시 엉덩이를 보여주는 자세로 바꿔버린다.
랑이는 정강이 위 건 배 위 건 내게 엉덩이만 보여준다.
내 커다란 얼굴이 부담스러운 걸까. 얼굴을 마주 보면 슬쩍 자리를 피한다.
잘 때도 마찬가지다. 고양이는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 싸우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는데
랑이는 내가 그럴 때마다 나에게 싸움을 거는 시비꾼 집사 혹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권위적인 집사라고 생각하는 걸까.
랑이가 깊게 잠들 때마다 살짝 팔베개를 해주기도 하는데 그것도 몇 분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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