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생활기록부 2023. 7. 29. 17:17

일을 하면서 상대와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싶다면, 그 방법은 간단하다. 

1. 성과를 까내리기.

2. 말을 끊고 가로채기.

3. 말꼬투리를 잡고 나쁘게 곡해 해석하기. 

4. 상대의 행동을 부족하고 나쁜 일이라고 못박기.

5. 상대의 실수를 크게 키우고 면박을 주기.

6. 나의 감정에만 충실하기. 

7. 생색내기.

 

나는 이런 일을 일주일에 1번은 당한다. 

일주일에 1번 7개의 일을 모두 당하기도 하고 한 가지만 당하기도 한다. 

컨디션에 따라 나의 반응도 다르긴 한데 기분이 좋을 수 없다. 기분이 나쁘다.

 

그렇다면 상대가 저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나를 깔아뭉개면서 희열을 느끼고 싶어서? 내가 싫어서? 아니다.

 

나라는 사람(타인)을 존중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관계를 망가뜨리는 일을 하고 있다. 

배려와 존중은 인품에서 나온다.

인품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그 사람이 못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만하고 겸손하지 못한 ....말 그대로 인품이 '부족'한 사람이다. 

인품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상처주고도 그게 잘못인 걸 모른다. 

 

자신의 감정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에  

주변과 상대에 대한 생각따윈 할 수 없다.

독설을 내 뱉고, 주변 공기가 싸해지고 듣는 사람의 표정이 나빠지면 

내면 어디선가 자기 탓이란 걸  알지만 받아들이지 못한다.

(무의식적인 자의식 보호가 시전되는 거라고 생각되어 진다)  

그리고 결국,  "내 탓이라는 거야?" 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고,

끝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남탓을 하기 시작한다. 

"너의 결과물이 내 마음에 안들고,

내가 바라는 만큼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런 말을 했는데 왜 내 탓이야?"

 

모든 잘못은 자신을 화나게 만든 너에게 있다.

네가 잘 했으면 내가 화나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은 말이라서 

사람들은 정말 내가 잘못했나? 내 탓인가? 하며 자괴감에 빠진다.

흔히 말하는 가스라이팅이 이런건가 싶다.

하지만  저 모든 말은 말이 되지 않는 말이다.

 

잘못이라는 것은 자기를 화나게 했다는 것이 잘못이라는 건데, 

내가 그의 감정까지 신경써 줄 필요가 없다.

내가 해야할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결과물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일부러 그에게 커피를 엎거나 욕을 하지 않는한 내가 7가지의 상황을 당할 이유가 없다.

 

잘 한다는 기준 또한 불분명하다. 

천만 영화도 내가 재미없음 재미없다.

잘한다 못한다는 지극히 개인 취행이다.  

남들이 나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오만함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최소한 타인에게 최선을 바란다면 의욕을 꺾으면 안된다. 

남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 일을 하지 말고 본인이 1부터 10까지 다하면 된다. 

 

사회성 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커뮤니티 글을 본 적 있다. 

사람들은 "말을 걸기 싫다." 고 느껴지는 사람이

바로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다.  

살면서 함께 하면 불편하고, 대화가 힘든 사람이 한 둘이겠냐만은 

말을 걸기 싫다고 느껴질 정도라면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남을 상처주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그 말에 큰 상처를 받는다.

작은 상처라도 나에게는 우주처럼 큰 상처가 된다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

 

말로 복을 짓고 말로 죄를 짓는다. 

 

'생활기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군가의 기대가 위로가 될 때  (0) 2022.04.26
다음 주에 계속  (0) 2022.01.16
손톱  (0) 2022.01.15
사이에서  (0) 2019.01.20
80's  (4) 2018.01.12
posted by 바아

누군가의 기대가 위로가 될 때

생활기록부 2022. 4. 26. 00:40

문장을 쓰기 전에 매번, 타이핑을 연습한다. 

그리고 문장의 첫머리는 '나' 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의식하자 마자 머리가 굳어서

오로지 나의 관심사는 '나'로 좁혀져 버린다. 

 

나는 타인의 관심과 기대가 부담스러운 사람이다. 

그 관심과 기대에 만족시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기대를 가질 수 없게 행동한 적도 많다. 

 

그 모든 것이 낮은 자존감이 탓임을

깨달은 건 얼마되지 않는다. 

 

스스로 못난 행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 나의 성공과 실패에 기대와 관심을 가진다는 압박감에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을 미리 겁을 먹었다는 것이다. 

실패하면 어떻고 성공하면 어떻기에.

나는 왜 미리 걱정하고 

기대감을 낮추기 위해 바보짓을 하는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누군가의 관심과 기대가 힘이 될 때

그때, 나 스스로, 오롯이, 혼자 서 있음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의 관심도 기대를 받았다고 해서 

내가 변할 필요도 없으며

그들을 만족시키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바라는 건 온건한 나의 모습이다. 

만약, 그들이 내의 결과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들이 잘못된 기대를 한 것이지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는 나로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있고

해야하는 일이 있다. 

따분하고 지루한 인생이라면

그럴수록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한다. 

 

 

'생활기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싸움을 시작하시겠습니까?  (0) 2023.07.29
다음 주에 계속  (0) 2022.01.16
손톱  (0) 2022.01.15
사이에서  (0) 2019.01.20
80's  (4) 2018.01.12
posted by 바아

다음 주에 계속

생활기록부 2022. 1. 16. 19:32

이제 노인이라고 불러도 되는 나이에 접어든 아빠와 엄마는

50년이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내고도 여전히 투닥인다. 

대개 엄마의 일방적인 불만으로 채워질 때가 많은데,

아빠는 그 불만을 해결해 줄 생각이 없다. 어떻게 보면 가끔 귀에 담지도 않는 것 같다.

아빠에겐 엄마의 요구를 하지 않아도 될,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온전히 아빠만의 논리이므로 엄마에겐 무논리나 마찬가지다. 

물론 나에게도 그러하다. 

두 사람은 늘 같은 이유로 투닥이다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불만성토회는 매주 이어진다. 

 

나는 이 성토회의 관객으로서 처음엔

두 논객의 입장에 몰입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좀처럼 이해하려거나 양보하려하지 않고

좁혀지지 않는 두 사람의 의견 차이에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극이 시작되면 끝이 나야할텐데. 이 극은 좀처럼 결말로 가지 않는다.  

 

이 성토회를 마주하는 나의 정신적 피곤함은 생각지도 않는 부모님은

매주 나를 만나고 싶어하고, 그 투닥임을 보여주며 서로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기를 바란다.

마당극도 아니고 왜 이렇게 나에게 의견을 묻는지. 

아빠 편을 들면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아하고, 

엄마 편을 들면 아빠의 무논리가 끝없이 반복된다. 

 

불친절한 관객인 나는 자리를 박차고 끝내 선언해버린다. 

 

"나 갈래. 다음 주에 봐" 

 

노부부 불만 성토회

- 다음 주에 계속- 

'생활기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싸움을 시작하시겠습니까?  (0) 2023.07.29
누군가의 기대가 위로가 될 때  (0) 2022.04.26
손톱  (0) 2022.01.15
사이에서  (0) 2019.01.20
80's  (4) 2018.01.12
posted by 바아

손톱

생활기록부 2022. 1. 15. 14:30

손톱은 단단한듯 보여도 내 살 속에서 만들어진 거라 

쉽게 갈라지고, 부서지고, 찢긴다.

손가락 끝에 붙어 신체 중 가장 바쁘기도 한데, 

몸의 컨디션에 빠르게 반응하는 곳이기도 하다. 

엄지 손가락 손톱의 반달 크기와 색깔, 

손톱 등이 굴곡이나 멍으로 간단히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도 있다.

 

내 손톱은 꽤 약해서 갈라져 있을 때가 많다.

오늘은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고 바로 플라스틱 뚜껑을 열다가

엄지 손가락 손톱이 휘는 걸 느끼고 얼른 손을 뗐다. 

평소 이렇게 손톱이 꺾여 찢긴 적이 여러번 있다. 

 

단단한 줄 알았는데 쉽게 다치고, 꺾이고, 물렁해져서 휘기도 하고.

이제와 보니, 내 지난 모습들이 손톱같았다.

쉽게 다치고, 꺾이고, 휘고. 

못난 곳은 새살에 밀려 자라나 손톱깎이에 깎여 버려진다. 

그 못난 곳은 깎여서 사라진 것인지. 잊혀진 건지.

아무래도 사라지지 못하고 잊혀진 것 같다. 

그리고 또 다치고, 꺾이고, 물렁해져서 못나지고 또 잊혀진다.

 

"잊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글로 남기거나, 사진을 찍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대청소를 하다가 잘린 손톱 조각을 발견하듯

글 조각이나 사진을 발견한다면 다행일까. 

다시 발견한 그 조각도 다시 묵히거나 버린다면 또 그렇게 잊혀질 것 같다.

 

최근엔 손톱 갈라짐이 드물다. 

오른 엄지로 왼손 엄지 손톱 끝을 만지고 누르며 단단함을 새겨본다. 

몽도처럼 부드럽고, 단단한 그 감각이 올해 나에게도 지속되길. 

꾹꾹 눌러본다.  

 

'생활기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군가의 기대가 위로가 될 때  (0) 2022.04.26
다음 주에 계속  (0) 2022.01.16
사이에서  (0) 2019.01.20
80's  (4) 2018.01.12
단순하게 하나  (0) 2018.01.09
posted by 바아

사이에서

생활기록부 2019. 1. 20. 18:19


 배는 곯지 않았는데 맹렬한 허기에 무엇으로든 속을 채우고 싶어질 때가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 한 곳에서 오래도록 자란 나는 고향을 떠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이웃들이 이사 가고, 빈집에 빌라가 들어설 때도 우리는 집을 떠나지 않았으니까.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엄마는 마당의 대추나무를 보며 말했다. -작년에는 알이 작더니 올해는 대추가 열리질 않네- 대추뿐만 아니었다. 여름이면 가지가 아래로 축 처질 만큼 굵은 알을 맺던 비파도 열매를 맺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무언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별생각 없이 전공과 무관한 곳에 취직했다. 80만 원. 그것도 밀릴 때가 있었다. 한 번은 대표가 높으신 분을 만난다며 접대 장소에 나를 데려갔다. 그 후 아버지뻘 되는 높으신 분이 보낸 주책맞은 문자에 덜컥 겁이 나서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대표는 눈을 피했다. 나는 다음날 출근 대신 문자를 보냈다. 그것은 나의 최초이자 최후의 배워먹지 못한 사직서였다. 그 후 나는 모텔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물뱀을 닮은 여사장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일은 꽤 재밌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극적이고 흥미로웠지만 오래도록 일할 수 없었다. 방향도 목표도 없었기에 내 삶은 막연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는 첫 직장과 같은 직업을 얻었고 서울로 왔다. 자취 집에서 서울까지 매일 길 위에서 4시간을 버렸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서울로 통근한 지 6. 직장도 여러 번 바뀌었지만 지금도 위성도시를 전전하고 있다.


 겨울이 깊어가는 이맘때면 부산집에는 동백나무가 꽃봉오리를 맺는다. 하지만 올해는 꽃을 피우지 못할 거다. 올겨울이 가기 전 집은 재개발로 흙더미에 묻힌다. 집과 작은 생명, 나의 유년, 가족의 추억이 고향 집에서 순장을 치른다. 퇴근 지하철이 도시를 벗어나 산과 비닐하우스를 끼고 돌았다. 몇 정거장만 지나면 나는 배를 채울 수 있다. 퇴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주린 배를 안고 쌀알처럼 밀려든다. 나는 밥공기의 밥알처럼 한 곳에 몰아 세워지다가 이리저리 비벼지고 뒤섞여버린다. 마치 가난한 냉장고의 잔반을 털어 비빈 비빔밤처럼 억울하고 서글퍼진다. 집에 가더라도 무엇을 먹더라도 나는 헛배를 불릴 것이다. 혀끝을 자극할 뿐 양푼이 가득 먹어도 허기를 채울 수 없다. 향냄새를 따라 들어온 넋처럼 갓지은 밥 냄새가 간절할 때가 있다매일 같은 날이지만 유달리 허기가 지는 그런 날이 있다.





'생활기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음 주에 계속  (0) 2022.01.16
손톱  (0) 2022.01.15
80's  (4) 2018.01.12
단순하게 하나  (0) 2018.01.09
고양이에게 팔베개  (1) 2017.06.28
posted by 바아

나만 그래 불행

카테고리 없음 2018. 2. 11. 15:13

함께 시간에 묻혀 흐를 뿐인데 누군가는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로 (혹은 늦게 태어나서) 숟가락을 달리 무는 사람들이 있다. 시대의 흐름을 잘 탄 서퍼들.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시대가 그들을 택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조삼모사같은 위안을 하기도 한다. 그런 위안에 기대다보면 어느새 불만덩어리 자존감 루팡이 되고 만다. 실패한 모든 것에 이유가 붙으니까. 나는 아무 잘못없고 다른 것들이 심히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고에 갇히면 도저히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다. 주변이 도움을 준다고 해도 귓등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구획지어 도무지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연결되지 않는 세상에 스스로 고립되어 갇힌다.  깨닫고 나오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라도 행복한 사람. 그런 사람도 있다. 고독한 시간을 즐긴다. 대부분은 타인과 건강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문제는 타인과 있어도, 혼자있어도 불행한 사람이다.


특히 이런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세상에 갇혀 살다보면  더욱 그런 위안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쉽게 그런 세상에 빠졌다가 돌아온다. 퐁당퐁당. 들어갔다 나오는 일이 가능한 것은 눈 돌릴 것이 많기 때문일수도 있다. 무엇보다 타인을 전보다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혔다. 최근 나의 생활을 꽤나 여유로워졌다. 다양한 직군의 사람을 만나 이야기할 기회도 생겼다. 나의 생각과 행동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다. 비판을 듣거나 칭찬을 듣기도 한다. 일상 속 흘러넘치는 그저 그런 이야기지만 개인에게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중 속에 숨어 있는 한 사람이 톡 하고 내 눈앞에 드러나는 것이다.  '만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오롯이 경청하고 존중할 때 이뤄지는 것이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타인을 100%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단지 그 사람의 사소한 감정 하나라도 공감하고 이해하기만 해도 큰 위안이 된다.  그 위안은 나로부터 나오기도하고 밖으로 흘러들어오기도 한다. 다정함은 스파크처럼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겹겹이 쌓여 큰 북처럼 둥~하고 울린다. 세상을 만나기 위해선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남에게 솔직하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나에게만, 스스로에게만  솔직하면 된다. 누구나 잣대는 다르기에 나의 소중한 것을 그들은 쉽게 망가뜨릴 수도 있다.  방어기재가 되는 거짓말이나 적당한 숨김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쓸때도 꾸밈없이 쓰라한다. 솔직해지지 않으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모르게 된다. 나를 아는 것. 소크라테스도 말한 그 말. 어릴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은 그말. 결국 간결한 말이 끝을 맺는다. 



posted by 바아

Junko Ohashi -Telephone Number, Maria Takeuchi - plastic love

Muse 2018. 1. 12. 00:53


'Mus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소년 (SE SO NEON) - 긴 꿈 (A Long Dream)  (0) 2018.01.04
haruka nakamura - Lamp (feat.Nujabes)  (0) 2016.01.07
Chet Faker - Gold  (0) 2015.03.31
Tove Lo - Habits (Stay High)  (0) 2015.03.31
크리스티나의 세계  (0) 2015.02.24
posted by 바아

80's

생활기록부 2018. 1. 12. 00:41

나는 80년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노란 장판 위 사랑방 사탕, 아빠,할아버지와 함께 갔던 금정동물원, 부산역 분수대, 서툴게 그렸던 오징어 그림, 옛집의 다락방. tv에서 봤던 말괄량이 삐삐. 모두 조각난 장면과 이미지밖에 없고 제대로 된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음악을 들으면 편안하다. 흥도 나고 기분이 좋다. 늘어짐 없고 자극적이지 않다.  정직하고 감성적인 창법. 촌스러움과 현대적 감성을 오가는 그 멜로디 라인이 매력적으로 들린다. 최근 들어 본 적도 없는 80년대 일본 가요를 듣는데 이게 찾아 듣는 재미가 있다. 대학생 때는 김정미, 김추자를 찾아 들었는데, 일본의 오하시 준코, 타케우치 마리야의 곡이 좋다. 서정적이고 힘있다. 그리고 신디사이저. 형광색 별이 떠 다니는 것 같은 재밌는 음을 낸다.  아이돌과 가수 그 사이에 있는 느낌도 든다. 

'생활기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톱  (0) 2022.01.15
사이에서  (0) 2019.01.20
단순하게 하나  (0) 2018.01.09
고양이에게 팔베개  (1) 2017.06.28
사는 덴 큰 문제가 없다.  (0) 2017.06.26
posted by 바아

단순하게 하나

생활기록부 2018. 1. 9. 02:35

시와 소설의 경계는 무엇이더라. 마치 현대미술을 보는 양 모든 것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시도 소설도 손으로 쓰는 것. 나는 문학을 공부하지 않아 그것들이 무엇이 다른지 잘 알지 못한다. 고등학생 때 배운 바로는 운율이란 것이 시가 다른 글과 구분되는 특징이었다. 입속에서 굴리면 사탕처럼 굴러가는 단어를 적절한 곳에 끼워 넣어 말 재미를 넣는다. 향가도 시조도 운율이 있더라. 운율이 살아 있는 시는 내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들이었다. 시인들의 이름 또한 시인스러워서 김영랑, 이상, 윤동주. 모두 혓바닥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산 시집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짧은 호흡에 마음을 움켜쥔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단편집마냥 두꺼운 시집 안에 긴 문장이 두 세 페이지를 넘어가는 시를 보며 나는 어디서 운율을 느껴야 하나 헤매게 된다. 그러다 어쩌다 한 문장이 콱 박히면 하고 돌 튀는 소리를 낸다. 모호해졌다. 모든 것이 모호하다. 성의 구분도, 사람들의 가치관도, 시도, 미술도 소설도 모든 것이 모호해졌다. 모호하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단지 갈피를 못 잡아 혼란스러울 뿐이다.

피카소의 그림처럼 어떤 이미지만 남아 떠도는 것 같다. 여인은 여인인데 저 여인은 무슨 얼굴인지 잘 모르는 그런. 한데 모아져 심플한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이 심플해져가고 있는데 나만 복잡하다. 무엇하나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이것저것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오늘은 누가 화제에 올랐네. 내일 날씨는 또 추워지네. 오늘은 눈이 내렸다. 소복히 내리는 눈은 아니었지만 땅 위를 얕게 덮은 눈 덕분에 길이 깨끗해 보인다. 백설기 같은 주차장. 그 위에 놓인 자동차도 하얗게 불거졌다. 두부같은 저 자동차 보닛 조각 뚝 떼어 된장찌개 끓여먹고 싶다. 내일 저녁은 퇴근길에 두부를 사야겠다.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아마 잊어버리겠지만하고 적어 놓는다. 그래야 잊지 않으니까.        

'생활기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이에서  (0) 2019.01.20
80's  (4) 2018.01.12
고양이에게 팔베개  (1) 2017.06.28
사는 덴 큰 문제가 없다.  (0) 2017.06.26
넋두리를 할 공간이 많다.  (0) 2017.06.23
posted by 바아

새소년 (SE SO NEON) - 긴 꿈 (A Long Dream)

Muse 2018. 1. 4. 01:01





소년, 소녀. 어른이 되지 않은 것들은 어쩜 그렇게 황홀한지. 한곡 한곡 따로 듣는 것보다 앨범 수록곡을 순서대로 이어서 듣는게 더 좋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큰 소리로 틀어 놓으면 가삿말에 실려 둥실 둥실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 

 



'Muse' 카테고리의 다른 글

Junko Ohashi -Telephone Number, Maria Takeuchi - plastic love  (0) 2018.01.12
haruka nakamura - Lamp (feat.Nujabes)  (0) 2016.01.07
Chet Faker - Gold  (0) 2015.03.31
Tove Lo - Habits (Stay High)  (0) 2015.03.31
크리스티나의 세계  (0) 2015.02.24
posted by 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