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배는 곯지 않았는데 맹렬한 허기에 무엇으로든 속을 채우고 싶어질 때가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 한 곳에서 오래도록 자란 나는 고향을 떠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이웃들이 이사 가고, 빈집에 빌라가 들어설 때도 우리는 집을 떠나지 않았으니까.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엄마는 마당의 대추나무를 보며 말했다. -작년에는 알이 작더니 올해는 대추가 열리질 않네- 대추뿐만 아니었다. 여름이면 가지가 아래로 축 처질 만큼 굵은 알을 맺던 비파도 열매를 맺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무언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별생각 없이 전공과 무관한 곳에 취직했다. 월 80만 원. 그것도 밀릴 때가 있었다. 한 번은 대표가 높으신 분을 만난다며 접대 장소에 나를 데려갔다. 그 후 아버지뻘 되는 높으신 분이 보낸 주책맞은 문자에 덜컥 겁이 나서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대표는 눈을 피했다. 나는 다음날 출근 대신 문자를 보냈다. 그것은 나의 최초이자 최후의 배워먹지 못한 사직서였다. 그 후 나는 모텔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물뱀을 닮은 여사장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일은 꽤 재밌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극적이고 흥미로웠지만 오래도록 일할 수 없었다. 방향도 목표도 없었기에 내 삶은 막연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는 첫 직장과 같은 직업을 얻었고 서울로 왔다. 자취 집에서 서울까지 매일 길 위에서 4시간을 버렸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서울로 통근한 지 6년. 직장도 여러 번 바뀌었지만 지금도 위성도시를 전전하고 있다.
겨울이 깊어가는 이맘때면 부산집에는 동백나무가 꽃봉오리를 맺는다. 하지만 올해는 꽃을 피우지 못할 거다. 올겨울이 가기 전 집은 재개발로 흙더미에 묻힌다. 집과 작은 생명, 나의 유년, 가족의 추억이 고향 집에서 순장을 치른다. 퇴근 지하철이 도시를 벗어나 산과 비닐하우스를 끼고 돌았다. 몇 정거장만 지나면 나는 배를 채울 수 있다. 퇴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주린 배를 안고 쌀알처럼 밀려든다. 나는 밥공기의 밥알처럼 한 곳에 몰아 세워지다가 이리저리 비벼지고 뒤섞여버린다. 마치 가난한 냉장고의 잔반을 털어 비빈 비빔밤처럼 억울하고 서글퍼진다. 집에 가더라도 무엇을 먹더라도 나는 헛배를 불릴 것이다. 혀끝을 자극할 뿐 양푼이 가득 먹어도 허기를 채울 수 없다. 향냄새를 따라 들어온 넋처럼 갓지은 밥 냄새가 간절할 때가 있다. 매일 같은 날이지만 유달리 허기가 지는 그런 날이 있다.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