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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소설의 경계는 무엇이더라. 마치 현대미술을 보는 양 모든 것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시도 소설도 손으로 쓰는 것. 나는 문학을 공부하지 않아 그것들이 무엇이 다른지 잘 알지 못한다. 고등학생 때 배운 바로는 운율이란 것이 시가 다른 글과 구분되는 특징이었다. 입속에서 굴리면 사탕처럼 굴러가는 단어를 적절한 곳에 끼워 넣어 말 재미를 넣는다. 향가도 시조도 운율이 있더라. 운율이 살아 있는 시는 내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들이었다. 시인들의 이름 또한 시인스러워서 김영랑, 이상, 윤동주. 모두 혓바닥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산 시집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짧은 호흡에 마음을 움켜쥔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단편집마냥 두꺼운 시집 안에 긴 문장이 두 세 페이지를 넘어가는 시를 보며 나는 어디서 운율을 느껴야 하나 헤매게 된다. 그러다 어쩌다 한 문장이 콱 박히면 ‘아’ 하고 돌 튀는 소리를 낸다. 모호해졌다. 모든 것이 모호하다. 성의 구분도, 사람들의 가치관도, 시도, 미술도 소설도 모든 것이 모호해졌다. 모호하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단지 갈피를 못 잡아 혼란스러울 뿐이다.
피카소의 그림처럼 어떤 이미지만 남아 떠도는 것 같다. 여인은 여인인데 저 여인은 무슨 얼굴인지 잘 모르는 그런. 한데 모아져 심플한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이 심플해져가고 있는데 나만 복잡하다. 무엇하나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이것저것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오늘은 누가 화제에 올랐네. 내일 날씨는 또 추워지네. 오늘은 눈이 내렸다. 소복히 내리는 눈은 아니었지만 땅 위를 얕게 덮은 눈 덕분에 길이 깨끗해 보인다. 백설기 같은 주차장. 그 위에 놓인 자동차도 하얗게 불거졌다. 두부같은 저 자동차 보닛 조각 뚝 떼어 된장찌개 끓여먹고 싶다. 내일 저녁은 퇴근길에 두부를 사야겠다.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아마 잊어버리겠지만’ 하고 적어 놓는다. 그래야 잊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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